김용준의 플라이낚시-1

Yong-OJ 이야기-2 : Yong-OJ 패턴 이야기
Y-OJ 플라이 이름의 뜻을 모르는 동호인들은 이름을 조금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O.J Simpson이라는 유명한 미식축구선수가 자기 부인과 그의 남자친구를 살해했던 사건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사건의 주인공 이름 약자와 이 플라이패턴의 이름이 일치되기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그 시각(법정에서 O.J Simpson의 무죄판결이 나던 날)에 우리는 새로운 플라이패턴을 고안해내고서 그의 이름이 아닌 필자의 이름 약자를 그 플라이의 이름으로 붙이게 되었다. (Y-OJ, 즉 Yong-OJ는 김용준의 '용', Orange의 'O', 필자의 미국 이름 John Kim의 'J'에서 한 글자씩 따온 이름이다. - 편집자 주)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위의 내용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며 차의 시동을 걸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의 판결에 대한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우리 형제는 약속이나 한듯이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 플라이의 이름에 관해 사람들이 느끼게 될 의구심에 대한 생각이 우리 형제에게 동시에 떠올랐기때문이다. 더구나 O.J Simpson이 무죄판결을 받던 그날에.....

Y-OJ는 시작부터가 우스웠고 생긴 모습도 귀엽다. 그러나 Fresh water shrimp(Scud)로서 또는 Egg pattern으로서 송어를 잡아내는 데는 훌륭했다. 바로 그날 점심쯤에 송어들이 바닥에서 feeding하는 것을 보신 형님께서 즉시 차로 돌아가 이 플라이를 만들어냈다.
제일 먼저 만드신 것이 오렌지색의 플라이였다. 송어들은 서로 다투며 플라이를 공격했고 우리 둘은 정신없이 아름다운 브라운송어와 무지개송어를 연달아 낚았다.
그런데 그때 쓰던 내 릴은 무척이나 소리가 요란했다. 필자의 릴은 23.00달러 짜리였는데 유난하게 요란하여 주위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다음날 나는 릴의 클릭컬을 떼어내고 낚시를 할까하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손님 끄는 효과 만점인 광고는 없다 싶어 이틀내내 찌-이-익 하고 소리내는 23.00달러 짜리 릴과 함께 마음껏 낚시를 했다.
캠프로 돌아와 우리는 하루의 조과와 내일의 계획을 세우고 또 다음날 낚시에 필요한 플라이를 타잉한 후 트럭 뒤 켐펄쉘 안에서 잠을 청했다. 여기서 형님이 Y-JR 과 Y-OJ를 탄생시키셨다. Y-JR은 형님의 절친한 친구이자 Assistant Guide인 Jerry Richards의 이름 약자를 따서 지었다. Jerry는 와이오밍주에서 이사를 와 지금은 형님을 도와 센 환강(San Juan River)의 낚시가이드로 활약하고있다.
우리 형님이 처음 플라이낚시에 뛰어들었을 때 타고 다니시고 움직이는 호텔로(?) 쓰여진 Toyota트럭은 형님께서 1982년에 구입하여 늘 타면서 뉴멕시코 센 환강 상류에 위치한 캠핑장에서 형님과 함께 고생고생 하다가 1999년도에 이웃에게 팔리게 되었다.
이 트럭에 켐펄쉘을 달아 짐을 실고 다니는 데에 쓰여졌는데 형님은 근 3년을 센 환강가의 여러 캠핑장을 오가며 이 켐펄쉘에서 살았다. 15일 이상 한 캠핑장에서 머물 수 없다는 법규정이 있었기때문이었다.
전기도 없이 플라이를 만들었고 겨울엔 히터도 없이 잠을 자야했다. 겨울바람이 불면 문 사이와 트럭과 켐펄쉘이 연결되는 곳으로 바람은 냉정하게도 들이닥쳤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그는 한겨울에도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며 살아갔다. 캠핑장의 화장실에 샤워장이 함께 있었지만 허술한 공사탓인지 샤워장 안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저녁에 늦게 가면 더운 물로 샤워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우리가 가기 전에 벌써 다른 사람들이 더운 물을 다 뽑아 쓰기때문이다.(필자는 꼭 1년에 한번씩 형님을 만나러 갔었고 또 같은 경험을 갈 때마다 해봐서 잘 안다.)
그러면 일찍 가서 샤워를 하지 왜 그렇게 늦게 가서 하지? 라고 의아해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잠깐 여기서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가에서 해질 때까지 고기를 많이 낚아야 사람들(미래의 손님들)에게 확실한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만해도 형님은 낚시가이드 면허가 없었던 터라 플라이도 강가 근처에선 판매하는 게 법으로 허락되지 않았다. 또한 형님이 먼저 손님들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다.
법은 손님이 먼저 물어왔을 때 판매하는 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이 자체는 센 환강 10여 킬로미터 밖에서만 판매를 할 수 있게 되어있었기에 무척 힘이 들었다.
Brown&Cutthroat 아마 필자인 나보고 그렇게 살아보라고 하시면 십중팔구, 더 말 할 나위없이 불가능 하다고 했을 것이 뻔하기때문이다. 이런 저런 방책을 세우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우편으로 직접 손님께 소포를 통해 판매하는 방법이었다.
일단 강가에서 플라이피셔들이 다가와 어떤 플라이를 사용하느냐고 물어오면 그때 플라이패턴의 이름을 일러주고 구입하기를 원하면 필자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가르쳐주었다.
이렇게 하여 형님은 센 환강과 유타주의 그린강(Green River)가에서 손님들의 주문을 받아 직접 손수 정성들여 만들어 팔았다. 이렇게 하여 형님은 조금씩 조금씩 손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오늘에 기초를 단단하게 일구어 나갔다.
이맘때 쯤 그린강에서 제일 큰 플라이샵에서 연락이 왔다. 용-스페샬(Yong-Special)관련 소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 플라이가 그린강에서도 제일 잘 잡히는 훌륭한 플라이라며 많은 물량 공급을 주문해 온 것이다. 이때쯤에는 고정적인 손님을 보강한데다 또 센 환강에 있는 플라이샵에서도 마찬가지로 부탁받은 바가 있었지만 일단 그린강에 있는 플라이샵의 제의를 우리는 작전상 먼저 받아드렸다.
센 환강에선 형님께서 주야로 송어를 잡아내면 더욱 많은 (소매)손님을 확보하지만 센환강에 있는 플라이샵에는 도매로 넘겨야하는 좋지 못한 조건이기에 일단 보류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용-스페샬 플라이가 주류 플라이피셔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했고 정통 플라이피셔들에게 주목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때 형님이 혼자 너무 많은 플라이를 만들어내기 힘이 들었고 주문물량 또한 계속 늘어났다. 그린강의 플라이샵에 주문받은 플라이를 보내면 (보통 한달 걸려서 만들어보냄-약 15,000개) 한두달 후에 또 더 많은 플라이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와서 이 필자도 이땐 밤샘을 하면서 만들곤 하였다.
이때 웃지 못할 일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몇몇 몰상식한 사람들이 용-스페샬을 카피하여 새 이름을 붙여 자기가 발명이나 한듯이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더욱 심한 것은 센 환강 주변의 어떤 플라이샵에서도 용-스페샬을 카피하여 다른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일이다.
우리는 플라이피셔들이 용-스페샬을 만들어 사용을 하여 조과에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다만 용-스페샬이라 부르면 될 것을 왜 본명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쓰는지 그 자체가 너무 싫고 안타깝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해서 판매하는 장사치들의 속셈이었고, 옳지 않은 그런 상도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Lee Wulff 플라이를 필자가 똑같이 만들어 이름만 바꾸면 그 플라이의 이름이 바뀔까?
용-스페샬도 그렇게 본명 그대로 불려졌으면 하는 당연한 생각을 이번 이야기에 올려본다. 바로 이런 사연이 있어 "Flyfisherman" 잡지에 몇가지 플라이를 공개하게 되었다.
전부터 그 잡지사로부터 여러번 플라이를 만드는 방법을 공개하여 달라고 누차 연락이 있었지만 사양을 몇번 하다가 형님의 친구인 Rick Takahashi의 부탁으로 작년 7월호에 공개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Rick Takahashi 씨의 내용도 간략하게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도 용-스페샬을 즐겨 사용하고 있으며 그가 거주하는 콜로라도에서 특히 많이 사용을 하고 있다고 종종 연락이 옵니다. 아무튼 한국 고향에서도 폭발적인 조과가 있었다니 반갑기만 합니다. 많은 사랑,성원,사용 바랍니다.